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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여름 내내 에어컨 없이 버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아낀 돈으로 뭘 했는지는 지금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빚 1억 원을 안고 살면서 전기밥솥을 팔고 손빨래를 하고 가스 계량기를 매일 아침 직접 적어 관리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 절박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한참을 상상하게 됐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남았던 건 절약 방법 자체가 아니라, 빚을 바라보는 관점 그 자체였습니다.
절약 실전 — 만 원을 아끼는 사람이 결국 다르다
회사 선배 중에 대출을 갚느라 몇 년을 버텼던 분이 있었습니다. 항상 도시락을 싸왔고, 커피는 탕비실 것만 마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유별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비슷한 경험담을 접하고 나서야 그 선배에게도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고정비를 줄여본 경험에 비춰봐도, 이건 생각보다 훨씬 심리적 체력이 필요한 일에 가깝습니다.
1억 원의 소비성 부채, 즉 소비를 위해 써버린 뒤 남은 빚을 16개월 만에 청산한 과정에서 핵심은 고정 지출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소비성 부채란 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분할 결제처럼 소비 행위 자체로 발생한 빚을 말합니다. 이런 빚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가치가 붙지 않고 이자만 불어나는 구조를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험료 월 200만 원 이상을 정리하고 해약환급금을 초기 상환에 사용한 것, 전기밥솥 대신 가스 압력밥솥으로 밥을 지어 냉동 보관해 보온 전력을 차단한 것, 세탁기 대신 손빨래로 수도세와 전기세를 동시에 줄인 것이 그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약환급금(解約還給金)이란 보험 계약을 중도에 해지했을 때 돌려받는 금액을 뜻합니다. 납입 기간이 짧을수록 원금보다 훨씬 적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당장의 현금 흐름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이 금액조차 의미 있는 종잣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수기 렌탈 서비스를 해지하고 필터를 직접 구매해 교체하는 방식만으로 한 달 2~3만 원을 아꼈다는 사례도 있었고, 가스 계량기 수치를 매일 아침 냉장고에 붙여 기록하며 당일 사용량을 직접 관리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출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관리비 및 수도광열비 지출은 대체로 십수만 원대 수준으로 집계되는 편인데, 이 숫자를 알고 관리하는 가구와 그냥 청구서대로 내는 가구는 1년만 지나도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할 부분입니다. 아끼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아끼는 것만 하다가 멈추는 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절약을 통해 부채를 줄이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상태가 고착되면 자산을 불릴 기회 자체를 놓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절약 경험을 겪은 분들 중에는 스스로 인지 부조화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전기밥솥을 팔았던 사람이 경매 정보 사이트 연간 이용료 100만 원 앞에서 망설이는 상황이 그 전형처럼 보입니다. 절약하던 감각에서 투자하는 감각으로 넘어가는 이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솔직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 보험 해약 후 해약환급금으로 소비성 부채 초기 상환 — 고정 지출 구조를 먼저 해체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다
- 전기·가스·수도 사용량을 숫자로 직접 기록 — 관리되지 않는 지출은 줄이기 어려운 경향이 있습니다
- 렌탈·구독 서비스를 직접 관리형으로 전환 — 작은 고정비도 1년 단위로 쌓이면 무시하기 어려운 금액이 됩니다
- 절약 심리가 투자 심리를 방해하는 인지 부조화를 인식하는 것 — 아끼는 단계와 불리는 단계는 의식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빚의 성격과 투자 대출 — 갚아야 할 빚과 굴려야 할 빚은 다르다
예전에 친구가 학자금 대출은 그냥 두고 그 여유 자금으로 주식에 넣었다가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무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 나름대로 빚의 성격을 구분하려 했던 시도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만 방향이 조금 어긋났던 것뿐이고요. 솔직히 이건 저에게도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빚을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나눠 생각해본 적이 그전까지는 없었거든요.
레버리지(Leverage)란 빌린 돈을 지렛대처럼 활용해 자기 자본보다 더 큰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내 돈 1억이 없어도 대출 1억을 끌어다 10억짜리 건물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때 핵심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임대 수익이 대출 이자를 충분히 커버하느냐일 겁니다. 월 이자가 300만 원인데 임대 수익이 1,000만 원이라면 이자는 수익을 위한 비용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소비를 위해 받은 신용대출은 이자를 낼수록 자산이 아니라 부채만 쌓이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출처: 한국부동산원이 다루는 부동산 유형에는 다가구 주택, 상가, 숙박업 건물처럼 임대 수익이 주된 목적인 자산군이 포함됩니다. 시세 차익형 자산인 아파트는 매각 시점에만 수익이 실현되는 반면, 임대 수익형 자산은 보유 기간 내내 현금 흐름(Cash Flow)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여기서 현금 흐름이란 자산을 팔지 않고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실제 수입을 말합니다. 300억 자산에 현금 흐름 300만 원보다 30억 자산에 현금 흐름 3,000만 원이 낫다는 식의 비교는 이런 구조 차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은행이 아무에게나 대출을 내주지 않으니 대출 자체가 안전하다는 논리는 다소 위험한 결론일 수 있습니다. 대출이 승인된다는 사실이 상환 능력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금리 상승기에 변동금리 대출을 안고 있다가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 사례는 실제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제 생각에 레버리지의 전제는 그 자산이 이자를 감당하고도 남는 수익 구조를 갖췄을 때에 한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 판단이 틀렸을 때의 리스크는 이런 경험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자를 시간을 사는 비용으로 보는 시각은 꽤 유효해 보입니다. 3,000만 원을 월 300만 원씩 모으면 10개월이 걸립니다. 그런데 지금 신용대출로 미리 당겨 쓰고 월 10만 원의 이자를 내면서 투자에 바로 진입한다면,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산 셈이 됩니다. 그 기간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면 이자 비용보다 훨씬 큰 기회비용을 지킨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건 투자 대상이 명확하고 수익 구조가 어느 정도 검증됐을 때에 한해 성립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 소비성 부채(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분할) — 자산 가치가 없어 최우선 상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실거주 담보 대출 — 레버리지 성격을 띠므로 상환 스케줄을 유지하며 여유 자금은 추가 투자로 돌리는 방식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 임대 수익형 투자 대출 — 임대 수익이 이자를 커버하는 구조인지 먼저 검증한 뒤 진입하는 것이 안전해 보입니다
저는 아직 큰 대출이 없어서 이런 구분을 실제로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처음으로 '나중에 집을 살 때 그 대출이 어떤 성격인지 미리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약 경험담은 동기부여로는 강렬하지만,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본인의 상황과 수익 구조에 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해 보입니다. 전기밥솥을 팔고 손빨래를 한 경험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생존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갚아야 할 소비성 부채가 있다면 빠르게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고, 그다음 단계로 어떤 자산이 현금 흐름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공부하는 순서가 비교적 현실적인 방향일 것 같습니다. 빚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레버리지가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 성격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