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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음악을 듣는다는 건 곧 멜론 탑100을 트는 일이었다.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이 순위대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 장르의 역사를 파고드는 유튜브 채널 '우키팝'을 알게 됐는데, 이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오래 남았다. 장르라는 걸 단순히 소리나 박자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티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장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걸 시작했는지, 그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지까지 들여다봐야 진짜 그 음악을 이해한 거라는 얘기였다.

음악을 발견하는 통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 관점을 이해하려면 결국 요즘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발견'하는지부터 봐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곡을 접하는 통로는 라디오나 차트였지만, 지금은 명백히 틱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실제로 2024년 빌보드 글로벌 200에 새로 진입한 곡의 84%가 그 전에 틱톡에서 높은 화제성을 거친 곡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짧은 클립 하나가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이제는 며칠 단위로 줄었는데, 라디오가 수십 주에 걸쳐 하던 일을 틱톡이 며칠 만에 해내고 있는 셈이다(출처: Soundstripe 리서치 정리).

플랫폼마다 음악을 다루는 태도도 다르다. 스포티파이는 신곡이 나오면 앨범 단위보다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빠르게 순환시키는 쪽에 가깝고, 애플 뮤직은 여전히 앨범 단위로 음악을 대접한다는 인상을 준다. 발매되는 앨범마다 아트워크를 크게 걸고 아티스트 인터뷰를 에디터 노트로 붙이는 방식은, 말하자면 음악을 박물관에 전시하듯 다루는 셈이다. 반대로 스포티파이의 에디터들이 특정 언더그라운드 사운드에 이름을 붙이고 플레이리스트로 묶어버리는 순간,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자 트렌드가 되어버린다. 플랫폼마다 음악을 소비시키는 방식 자체가 다르게 설계돼 있는 셈이다.

언더그라운드 인력이 케이팝으로 흡수되는 흐름

우키팝은 인터뷰에서 최근 걸그룹 중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팀으로 뉴진스를 꼽으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요소들을 이미 다 꿰뚫고 있으면서 그걸 정교하게 섞어놓아서 하나하나 파헤칠수록 오히려 감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저지 클럽 특유의 킥 패턴을 몰라도 그 리듬을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장르 신의 재능 있는 인력들이 이제는 대부분 케이팝으로 흡수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실력 있는 십대 아티스트가 나타나면 케이팝 기획사들이 먼저 데려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라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후로는 상황이 더 확실해졌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이 먼저 케이팝과의 협업을 원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 현상을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다. 케이팝이라는 이름 안에도 음악적 완성도의 편차가 크고, 뉴진스처럼 검증된 비전을 가진 팀이 있다면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 만하다는 것이다.

록과 힙합의 관계에 대한 시각도 흥미로웠다. 밴드 사운드의 록이 예전만큼 주류에서 힘을 못 쓰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록을 '청춘의 에너지, 반항의 정신'으로 정의한다면, 요즘 일부 래퍼들이 그 에너지를 랩보다는 함성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걸 관찰할 수 있다. 미국 페스티벌에서 랩 대신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관객을 열광시키는 래퍼의 사례는, 표현하는 문법과 사운드만 달라졌을 뿐 그 안에 흐르는 건 예전 록스타들의 에너지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차트의 시대가 저물고, 콘텐츠 소유권 경쟁이 시작됐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한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멜론 탑100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팬덤 화력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다 보니 실제로 들어보지 않은 곡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일이 흔해졌고, 빌보드처럼 글로벌 차트가 익숙해진 상황에서 국내 차트 1위라는 타이틀 자체의 체감 무게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멜론의 유료 가입자 수 자체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줄지 않았는데, 습관적으로 앱을 켜고 상단 버튼을 누르는 소비층이 여전히 두텁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성장 동력을 새로 만들기 위해 플랫폼들이 콘텐츠 소유권 자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한 것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출처: CNN Business). 자체 플랫폼에 독점적으로 실을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리는 것 자체가 스트리밍 경쟁에서 하나의 전략이 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눈길이 갔던 지적은 짧은 형식의 콘텐츠가 대세가 되면서 음악을 화면 없이, 눈을 감고 소리에만 집중해서 듣는 경험 자체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뮤직비디오든 틱톡 배경음이든 뭔가를 봐야 음악을 듣게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키팝은 비관적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자신 같은 장르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고 봤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파고들어 소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듣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결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결국 예전처럼 하나의 차트가 모두의 취향을 대표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대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작은 커뮤니티들이 늘어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순위보다 어떤 크리에이터가 어떤 맥락으로 이 곡을 소개하는지를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지금 시대에 음악을 좀 더 깊이 듣는 방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