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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얼마 전 계좌를 열어보고 잔고가 불어 있는 걸 보면서 괜히 뿌듯해했으니까요. 그런데 곧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오르는 이 돈이 정말 시장 스스로의 힘인지, 아니면 누군가 짜놓은 구조 위에 저도 모르게 올라탄 건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2026년 초 코스피가 5,000선을 처음 돌파했던 시점의 수급 데이터를 직접 들여다봤습니다.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 넘어갔다면 몰랐을 꽤 다른 그림이 나오더군요.
수급 구조: 기관이 샀다고 다 같은 기관이 아닙니다
저희 팀 대리님이 그 무렵 점심마다 코스피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제 진짜 우리나라 주식이 제대로 평가받는 때가 온 것 같다"는 말을 며칠째 반복하시더군요. 솔직히 저도 계좌를 보면서 비슷한 기분이었으니 딱히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급 데이터를 조금 들여다보고 나서는 그 기분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한 흐름에는 실제로 우리 경제의 저력이 일부 반영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상법 개정을 비롯한 제도 개선이 맞물렸고, 그 결과 자금이 부동산 대신 주식 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5,200 부근까지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으로 올랐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2월 초부터 약 3주 사이 개인은 6조 4천억 원, 외국인은 7조 8천억 원어치를 순매도했습니다. 반면 기관은 11조 5천억 원어치를 순매수했고,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외국인이 팔아도 기관이 받쳐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저도 그 기사들을 직접 찾아 읽어봤는데, 확실히 읽으면 안심이 되는 구조로 쓰여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관 중 도대체 누가 샀느냐는 것입니다.
수급(需給)이란 주식 시장에서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자금 흐름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어떤 주체가 얼마나 사고 팔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기관은 크게 연기금, 투신(투자신탁), 보험, 금융투자 등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성격은 꽤 다릅니다.
연기금과 보험사는 상대적으로 장기 자금 성격이 강합니다. 한번 사면 잘 팔지 않는 편입니다. 반면 금융투자는 다릅니다. 이 기간 연기금은 약 500억 원 순매도, 보험사는 약 4,500억 원 순매도였습니다. 장기 투자자로 분류되는 주체들은 오히려 주식을 줄인 셈입니다. 반면 금융투자는 약 10조 2천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전체 기관 순매수의 80% 이상을 사실상 하나의 주체가 채운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제가 테마주 급등 소식만 듣고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물렸을 때도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다들 "기관이 사고 있다"고만 했지, 그 기관이 어떤 성격의 자금인지는 아무도 짚어주지 않았거든요.
- 연기금: 약 -500억 원 순매도. 당시 국내 주식 비중이 종전 목표치(14.9%)에 근접해 추가 매수 여력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됩니다(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보험사: 약 -4,500억 원 순매도. 장기 투자 주체로 분류되는 자금이 오히려 주식 비중을 줄이는 흐름
- 투신(사모·공모 펀드): 약 1조 6천억 원 순매수. 다만 직전 기간에 비슷한 규모를 팔았다가 되산 흐름에 가까워 실질적인 신규 자금 유입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 금융투자: 약 10조 2천억 원 순매수. 기관 전체 순매수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사실상 이 시기 상승을 떠받친 주체로 보입니다
참고로 이 글을 처음 정리한 시점에서 몇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을 덧붙이자면, 국민연금은 5월 말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크게 상향 조정했습니다. 당시 목표치에 근접해 추가로 살 여력이 크지 않았던 연기금이, 이제는 상당한 매수 여력을 다시 확보한 셈입니다. 뒤에서 설명할 수급 불안 요인 중 하나가 그만큼 완화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선물 전략: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메커니즘
그렇다면 금융투자는 왜 10조가 넘는 돈으로 주식을 샀을까요? 제 경험상 이 정도 규모의 단기 매수는 대부분 누군가의 움직임에 기계적으로 반응한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이라기보다 시스템이 짜놓은 대로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외국인의 선물(先物, futures) 매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물이란 미래의 특정 시점에 특정 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기로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물은 소액의 증거금만으로도 현물 시장보다 훨씬 큰 규모로 거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은 이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물을 대량으로 매수해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아지면, 이 가격 차이를 노리는 금융투자 회사들이 차익거래(arbitrage)에 나서게 됩니다.
차익거래(arbitrage)란 같은 자산이 두 시장에서 다른 가격으로 거래될 때, 싼 쪽을 사고 비싼 쪽을 팔아 위험 없이 이익을 취하는 거래 방식입니다. 선물이 현물보다 비싸지면 금융투자는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는 방식으로 이 차익을 챙깁니다. 이 과정에서 현물 주식이 대거 매수되며 주가가 오르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오른 현물 가격에 보유 주식을 대량으로 팔고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2월 이후 외국인이 조 단위로 현물을 순매도하면서도 주가가 계속 오를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이 구조가 지목됩니다.
이 구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이 선물 포지션을 갑작스럽게 매도로 전환하면, 금융투자도 즉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싸진 선물을 사고 현물을 대량으로 팔게 되는 구조입니다. 지금 시장을 받치고 있는 10조 2천억 원 규모의 자금이 어느 날 매도 압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고, 그 경우 지수에 상당한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는 규모로 추정됩니다. 한국거래소(KRX)가 공개하는 투자자별 매매 현황 데이터를 직접 들여다보면 이런 흐름이 수치로 확인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 투자자별 거래실적).
이런 내용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말 안 하는 비밀" 같은 식의 표현은 개인적으로 좀 과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수급 분석은 증권사 리포트에서도 정기적으로 다루는 내용이니까요. 그렇다고 이 내용이 무의미하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금융투자의 10조 순매수가 단기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 연기금이 당시 추가 매수 여력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짚어볼 만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시장 전체가 위험하다고 단정 짓는 건 저 개인적으로는 다소 과한 해석일 수 있다고 봅니다.
- 외국인이 선물을 대량 매수 →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높아짐
- 금융투자가 가격 차익을 노리고 선물 매도 + 현물 매수(차익거래)
- 외국인은 오른 현물 가격에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이탈
- 외국인이 선물 방향을 전환하면 금융투자도 현물 매도로 전환할 가능성 → 변동성 확대 리스크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 주가가 오를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기분이 판단을 흐리게 두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계좌 잔액이 올라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뿌듯해했으니까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HBM 수요가 탄탄한 것도 사실이고, 기업 펀더멘탈이 중요한 것도 맞습니다. 다만 수급 구조가 흔들리면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먼저 출렁일 수 있다는 걸, 저는 테마주에서 손실을 겪고 나서야 몸으로 배웠습니다.
지금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입니다. 다만 뉴스에 나오는 "기관이 사서 안전하다"는 문장 하나만 믿기보다는, 그 기관이 어떤 성격의 자금인지 한 번 더 따져보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주식 앱을 열 때마다 이 질문을 먼저 떠올리게 됐습니다. 누가 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주체는 왜 사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