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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는 그냥 좀 더 비싼 커피 정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금만 파고들면, 품질 기준부터 수익 구조, 공급망까지 커피 한 잔 뒤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스페셜티 커피에는 전 세계 공통의 인증 마크가 있을 거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제적으로 단일하게 공인된 인증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통용되어 온 기준은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커핑 시트, 즉 향미와 산미, 바디감, 균형 등을 항목별로 채점하는 평가표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는 것이었다. 다만 SCA는 최근 이 기준을 확장해서 향미 같은 내재적 요소뿐 아니라 원산지, 재배 방식, 지속가능성 같은 정보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하는 커피 가치 평가(Coffee Value Assessment) 체계로 정의를 넓혀가고 있다(출처: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단일 점수보다 "이 커피가 왜 특별한가"라는 이야기 전체를 평가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경매로 거래되는 원두, 그리고 입맛의 비가역성
이 채점이 사실상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합의에 가깝다는 점을 보완하는 장치가 COE(Cup of Excellence)라는 국제 품평회다. 에티오피아나 브라질 같은 생산국의 농장들이 원두를 출품하면 각국에서 초청된 심사위원들이 커핑으로 순위를 매기고, 낙찰자가 경매로 해당 원두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상위 입상 원두는 킬로그램당 수백만 원, 드물게는 그 이상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아직은 비주류라는 인식이 있지만, 소비자 사이의 체감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원두를 정기 구독해서 마시다가 어느 날 프랜차이즈 커피를 다시 마셨을 때 "예전 맛이 아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흔한데, 입맛의 문턱을 한 번 넘으면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게 이 시장의 특징이다.
테라로사가 보여주는 수직계열화의 힘
테라로사의 창업 이야기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은행원 출신 창업주가 강릉에서 카페를 열었다가 손님이 없어 폐업 직전까지 갔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서사다. 기사와 방송에서 반복된 이 서사가 실제 소비자에게 그대로 각인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강릉이라는 지역 자체가 하나의 여행지로 소비되는 현상이다.
테라로사의 성장에는 자본의 역할도 컸다. 사모펀드 운용사 UCK파트너스가 2021년 11월, 창업주 지분을 포함한 테라로사 운영사 지분 약 37%를 약 650억 원에 인수하며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면서 창업주는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지금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출처: 서울경제 시그널). 커피 한 잔 파는 브랜드에 사모펀드가 수백억 원대 자금을 여러 차례 투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장이 단순한 기호식품 비즈니스를 넘어섰다는 신호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다음이다. 테라로사는 생두 조달부터 로스팅, 매장 운영까지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몇 안 되는 국내 브랜드다. 강릉 본사에 커피공장을 두고,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서 전국 매장과 B2B 채널에 납품하는 구조다. 반면 매출 규모가 훨씬 큰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본사 규정에 따라 완성된 원두를 사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매출 규모로만 보면 한국 스타벅스는 2조 원을 훌쩍 넘겨 테라로사와 비교가 안 되지만, 공급망을 얼마나 직접 쥐고 있느냐에 따라 수익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는 게 이 업계의 핵심 논리다.
다만 "지방이라 임차료가 싸다"는 설명은 다소 단순화된 해석일 수 있다. 강릉이나 속초처럼 관광지화된 지방 상권은 이미 임차료가 서울 변두리를 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서, 수익성을 입지 이점만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테라로사 수익성의 핵심은 지역이 아니라 공급망을 스스로 통제하는 구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리브레, 모모스, 프리츠 — 공급망을 쥔 자가 이긴다
커피 리브레는 국내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뛰어든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큐그레이더(SCA가 인증하는 커피 감별사 자격) 자격을 갖춘 이들이 만든 브랜드라는 점이 자주 언급되는데, 리브레는 매장 수를 늘리는 방식보다는 생두 비즈니스와 원두 도매 쪽에서 주로 성장해온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소규모 카페들이 결국 로스팅까지 손을 대는 이유는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업계에서 흔히 통용된다. 매장 운영만으로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고 원두 도매로 버티는 로스터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원두를 사서 쓰는 카페보다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가, 그리고 생두까지 직접 조달하는 브랜드가 원가 구조에서 유리하다는 건 업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설명이다. 리브레가 해외 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생두를 확보하는 방식은, 그 자체가 진입 장벽이자 수익성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다만 이 희소성 서사의 이면도 함께 봐야 한다. 스페셜티 브랜드가 발품 팔아 좋은 원두를 확보하는 이야기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공급망 가장 아래에 있는 농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가격 변동성이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고 있다. 매년 같은 농장에서도 맛이 달라질 수 있는 커피의 특성상, 그 불안정성의 상당 부분을 결국 생산자가 흡수하게 된다.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구매자에게는 프리미엄이 되지만 공급자에게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있는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커지는 이유를 "한 번 좋은 커피를 마시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시각이 있는데, 이 입맛의 비가역성이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입맛이 저절로 바뀌는 게 아니라, 그 변화를 유도하는 산업적 장치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원두 구독 서비스,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 SNS 콘텐츠 같은 것들이 진입 문턱을 낮추고 소비자를 스페셜티 커피 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흔히 이 변화는 "취향의 성숙" 같은 추상적인 말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 변화를 설계하는 비즈니스 주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 종종 빠져 있다.
모모스와 프리츠 같은 브랜드의 성장도 단순히 커피가 맛있어서만은 아니다. 모모스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가 대표로 있는 브랜드로, 부산 영도에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며 도시 자체를 커피 목적지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써왔다. 프리츠 역시 서울을 기반으로 생두부터 로스팅까지 직접 통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갖춘 것은 커피 맛만이 아니라 공간 경험과 콘텐츠 전략이다.
커피 한 잔의 가격 차이가 단순히 원두 등급 때문만은 아니다. 생두 조달, 로스팅, 매장 운영까지 공급망을 얼마나 직접 통제하느냐가 수익 구조를 결정하고, 그게 결국 브랜드 가치로 연결된다. 테라로사, 커피 리브레, 모모스, 프리츠 모두 이 구조를 각자의 방식으로 실현한 사례다. 스페셜티 커피에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가까운 로스터리 카페 한 곳에 가서 메뉴판의 커핑 노트를 읽어보고 사장님에게 한마디 물어보는 것만으로 이 시장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이 글은 특정 브랜드나 투자에 대한 판단을 권유하는 내용이 아니며, 공개된 자료를 참고해 정리한 개인적인 관찰기임을 밝혀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