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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후배가 "나 혼자만 레벨업" 완결편을 하루 만에 다 봤다며 결제 금액을 자랑처럼 꺼냈을 때, 저는 그게 단순한 소비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소비 패턴이 어떤 비즈니스 설계 위에서 작동하는지 알고 난 뒤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웹툰 결제는 "재밌으니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꽤 정밀하게 설계된 수익화 구조가 깔려 있습니다. 한국 웹툰 시장은 2021년 기준 국내 유료 결제자 수만으로 전 세계 나머지 국가 결제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을 만큼 성장했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적 문제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기다무와 미리보기, 설계된 소비 심리

후배가 하루에 몇만 원을 쓰면서도 "낚인 게 아니라 재밌어서 결제한 것"이라며 뿌듯해했던 그 감각을, 저는 기다무(기다리면 무료) 모델이 정확히 노리는 지점이라는 걸 알고 난 뒤 다시 보게 됐습니다. 기다무란 24시간마다 한 편씩 무료로 공개하되, 기다리기 싫으면 유료로 결제하면 된다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건 이것이 "무료였던 것을 유료로 바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던 조바심을 만들어낸 뒤 그 감정에만 선택적으로 과금하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이런 수익화 모델의 전환점은 대략 2019년에서 2021년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 매출은 2019년 약 4천억 원에서 2021년 1조 원 규모로 두 배 넘게 성장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건 이 무렵 소비자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유료로 결제해도 괜찮겠다"는 심리적 임계점을 넘어선 시기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웹툰 작가들 사이에서도 2015~2016년 유료 시스템 도입 직후 수익 구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도 이 성장을 뒷받침합니다. 자취하는 친구가 "요즘 회귀물은 배경 설명 읽다 지치지 않고 바로 빠져든다"고 했을 때, 저는 그게 단순한 취향 얘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소재는 장르 진입 장벽을 낮추는 서사 설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장르 허들이란 특정 장르를 즐기기 위해 독자가 미리 알아야 하는 세계관·용어·설정의 문턱을 말합니다. 무협이라면 화산파가 무엇인지, 내공이 어떻게 쌓이는지를 알아야 몰입할 수 있지만, 환생·빙의 주인공은 이미 그 세계를 겪고 온 인물이기 때문에 독자도 함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유보를 두고 싶습니다. 콘텐츠 업계에 있는 지인은 "회빙환 장르의 허들 낮추기가 결국 서사 다양성을 깎아 먹는 획일화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시작부터 만렙 주인공만 반복된다면, 성장 서사가 주는 감정적 깊이 자체가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업적 효율과 콘텐츠 다양성이 반드시 같은 방향을 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 모델을 바라볼 때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다무 모델: 무료 공개 분량을 유지하되, 기다림을 못 참는 조바심에만 과금하는 심리 설계
  • 미리보기 수익화: "무료→유료 전환"이 아닌 "추가 욕구에 대한 선택적 과금"으로 소비자 저항을 낮춘 구조
  • 회빙환 소재: 장르 진입 장벽을 낮춰 신규 독자를 끌어들이되, 서사 다양성 축소라는 부작용을 동반
  • 2019~2021년: 소비자의 유료 결제 인식이 전환된 시기, 시장 매출이 두 배 이상 성장한 구간
요약: 웹툰 소비자의 자발적 결제처럼 보이는 행동 뒤에는 기다무·미리보기·회빙환 소재가 맞물린 정밀한 심리 설계가 있으며, 그 효율성 이면에는 서사 획일화라는 부작용도 함께 자라고 있다.

플랫폼 경쟁과 CP사 구조, 숫자가 말하는 것

예전 직장에서 그림을 그리던 동료가 "스튜디오 시스템 때문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별로 없다"며 웹툰 작가 지망을 접었을 때, 저는 그걸 그저 개인적인 좌절담으로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CP사(Contents Provider사, 웹툰 콘텐츠를 기획·제작해 플랫폼에 공급하는 스튜디오형 업체)의 수가 2020년 62개에서 2021년 178개로 1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었다는 수치를 보고 나서야, 그 동료의 판단이 시장 구조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CP사란 쉽게 말해 작가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웹툰을 분업 생산하는 스튜디오 체계를 뜻합니다. 이 수치를 처음 확인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1년 만에 이런 변화가 나왔다는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구조 재편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CP사 수가 늘었다고 해서 수익성까지 함께 올라간 건 아닙니다. 한 CP사의 경우 2022년 기준 급여 및 지급수수료가 매출의 85%에 달했습니다. 지급수수료란 CP사가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원고료·인세 등 창작 대가 비용을 말합니다. 매출의 85%가 이쪽으로 나간다면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스타트업에 다니던 친구가 "사람은 갈아 넣는데 회사엔 남는 게 없다"고 했던 말이 이 구조와 정확히 겹쳐 보였습니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편당 기대 매출은 낮아지고, 선택받기 위해 컷 수를 늘리거나 채색 퀄리티를 높이면 비용은 오히려 올라갑니다. 치킨 게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상황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플랫폼 경쟁도 이 구조 안에서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공개된 실적 자료를 보면 네이버 웹툰 부문은 최근 몇 년간 매출 성장과 함께 적자 폭도 점차 줄여가는 흐름을 보이는 반면(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 카카오 스토리 부문은 상대적으로 정체 내지 역성장 국면을 겪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카카오가 기다무 모델로 초반 매출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코로나 특수가 끝난 이후 로맨스 판타지 장르 중심의 여성 독자 이탈이 겹치며 주력 수익원이 흔들린 것으로 보입니다. 로맨스 판타지(로판)는 카카오 페이지의 강점 장르였는데, 엔데믹 이후 이 장르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반면 무협·판타지 장르는 비교적 잘 유지된 점이 두 플랫폼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해줍니다.

AI 활용 문제도 이 맥락에서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 작업에만 AI를 쓰면 된다"는 낙관론이 있고, 그 취지 자체는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AI 이미지 생성 모델의 학습 데이터가 기존 작가들의 화풍을 동의 없이 포함했다는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노동 강도 완화라는 긍정적 프레임만으로 접근하면, 저작권과 화풍 도용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가려질 수 있습니다. 창작자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AI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AI 학습 과정 자체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동시에 성립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 CP사 급증: 2020년 62개 → 2021년 178개, 개인 작가의 시장 진입 장벽이 구조적으로 높아진 결과
  • 수익성 역설: 매출이 늘어도 급여·지급수수료가 85%를 차지하면 CP사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
  • 네이버 vs 카카오: 네이버는 성장과 적자 축소를 동시에 겪는 중, 카카오는 로판 장르 이탈 등으로 상대적 정체
  • AI 도입 논쟁: 노동 경감이라는 순기능과 기존 작가 저작권 침해라는 역기능이 동시에 제기되는 중
요약: CP사 급증과 플랫폼 간 수익 격차는 웹툰 시장의 외형 성장이 창작자와 기업 모두에게 반드시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장을 볼 때마다 성장 수치와 현장 체감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2030년 세계 웹툰 시장이 80조 원까지 성장한다는 전망이 있고, 방향성 자체는 크게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크롤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산업 단위로 처음 만들어낸 곳이 한국이고, 그 노하우의 축적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이건 분명한 강점입니다.

다만 그 강점 위에서 창작자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인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웹툰을 그저 즐기는 입장에서도 불법 복제 사이트 문제, AI 학습 데이터 문제, CP사 수익 구조 문제를 외면한 채 소비만 하는 건 결국 이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후배가 몇만 원을 쾌활하게 결제하던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그 결제가 어디로 얼마나 흘러가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게 됩니다. 웹툰을 즐긴다면, 한 번쯤 합법 플랫폼 결제가 실제로 창작자에게 어떻게 분배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s62xJaWtsU&list=PLbG_OH_pU3mr80W2ShL6W2JDYmdH9D9Am&index=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