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올리브영이 유통 마진으로 떼돈을 번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재무제표를 뜯어보니 이익률은 생각보다 훨씬 얇았고, 그 돈은 대부분 임차료와 물류비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국내 H&B(헬스앤뷰티) 시장이 사실상 올리브영 한 곳으로 수렴된 지금, 인디 브랜드는 어디에 기대야 하고 다이소는 정말 이 판을 흔들 수 있을까요.
인디 브랜드가 뜨는 건 맞는데, 살아남기는 더 어려워진 구조입니다
예전 회사 동료의 배우자가 뷰티 인플루언서였습니다. 화장품 브랜드를 하나 론칭했다가 반년 만에 접었다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었을 때는, 그저 운영이 서툴렀나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의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 실패가 개인의 역량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 한국 화장품 제조는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방식이 중심입니다. ODM이란 제조사가 브랜드사와 함께 제품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는 방식으로, 브랜드가 방향성만 제시하면 코스맥스·콜마 같은 제조사가 레시피 설계까지 함께 맡아줍니다. 덕분에 초기 재고를 만들 자금만 있으면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진입 장벽이 사실상 사라진 셈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로맨드는 2022년 매출액 853억 원, 영업이익률 11%를 기록했습니다. 화장품 회사치고는 낮은 수치인데, 매출원가율이 61%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가성비 포지셔닝을 유지하려다 보니 원가 구조 자체가 빠듯하게 잡혀 있는 것입니다. 틴트 하나로 이름을 알린 뒤 베이스·스킨케어로 라인을 확장하는 중이지만, 킬러 아이템(단일 제품이 매출을 견인하는 핵심 상품) 이후의 확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숫자가 그대로 보여줍니다.
소비 패턴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니스프리처럼 한 브랜드에서 기초부터 색조까지 다 구매했다면, 지금은 틴트는 로맨드, 아이브로우는 클리오, 베이스는 또 다른 브랜드에서 고르는 식입니다. 브랜드 충성도보다 제품 단위의 선택이 기준이 됐습니다. 인디 브랜드에는 기회지만, 동시에 단 하나의 아쉬움만으로도 바로 이탈당하는 냉정한 시장이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ODM 구조 덕분에 브랜드 창업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살아남는 브랜드는 극소수
- 킬러 아이템 이후 라인 확장이 인디 브랜드의 공통된 난제
- 소비자가 브랜드가 아닌 제품 단위로 선택하면서 충성도 유지가 더 어려워짐
올리브영 독점 구조, 고마운데 불편한 이유
올리브영이 유통 채널이라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단순한 유통 채널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 건 최근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친척 어른이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모레퍼시픽 매출이 2021년 4조 8천억 원에서 2023년 추정치 3조 8천억 원으로 2년 만에 1조 원 가까이 줄어든 것처럼, 대기업 중심 뷰티 시장이 줄어드는 자리를 인디 브랜드와 올리브영이 채우고 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
올리브영의 2022년 매출액은 2조 7,800억 원입니다. 전년 대비 6,000억 원 이상 늘었습니다. 매출원가율은 약 52%로, 유통 채널치고는 꽤 남기는 구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영업이익률은 약 10% 수준에 머뭅니다. 이유는 판매관리비입니다. 물류비 약 1,500억 원, 사용권자산상각비(임차료에 해당) 약 1,370억 원, 지급수수료 약 1,110억 원이 빠져나갑니다. 전국 직영점 체제를 유지하면서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데 그만큼 재투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
흔히 올리브영이 유통 마진으로 폭리를 취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실제 수치를 보고 나면 그 판단이 다소 성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구조 자체가 소자본 브랜드들에게는 올리브영 없이 오프라인 노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직영점 확장에 막대한 비용을 쏟기 때문에 경쟁자가 비슷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수조 원 단위의 선투자가 필요합니다. 이 진입 비용이 곧 올리브영의 해자(moat), 즉 경쟁자가 쉽게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구조적 방어막입니다.
세포라의 2022년 매출액은 136억 원이었는데 영업손실이 176억 원이었습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상태가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시코르는 아직 별도 재무제표조차 공시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작습니다. 결국 H&B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자는 사실상 올리브영뿐인 셈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
- 올리브영 2022년 매출 2조 7,800억 원, 영업이익률 약 10%로 수익보다 인프라 투자에 집중
- 세포라 영업손실 176억 원, 시코르는 재무 미공시 — H&B 시장 경쟁은 사실상 올리브영 독주
- 직영점 중심 구조가 경쟁 진입장벽이자 동시에 브랜드 종속을 만드는 양날의 검
다이소 뷰티가 판을 흔들 수 있는 진짜 이유
며칠 전 우연히 들른 다이소에서 화장품 코너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커진 걸 확인했습니다. 함께 갔던 동생이 "요즘 여기서 틴트도 사고 아이섀도우도 산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듣고, 이게 업계 전망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예전엔 올리브영 앱을 켜서 리뷰부터 읽고 사던 동생이, 이제는 다이소에서 먼저 써보고 괜찮으면 정품을 나중에 사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을 바꾼 것입니다.
다이소가 뷰티 시장에서 무서운 이유는 바잉 파워(buying power), 즉 대규모 구매력을 바탕으로 제조사나 공급사와 유리한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힘 때문입니다. 2023년 말 기준 다이소 매장은 약 1,442개로, 올리브영 매장(약 1,332개)을 이미 매장 수에서 앞서고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올리브영에 20% 마진을 주던 걸 다이소에 10%만 줘도 전국 1,400여 개 매장에 한 번에 입점할 수 있다면, 안 들어가는 쪽이 오히려 손해인 구조입니다.
트윙클팝은 클리어랩과, 테그(태그)는 투쿨포스쿨과 협업해 다이소 전용 라인을 이미 출시했습니다. 최고 가격을 5,000원 이내로 맞추려면 용량을 줄이고 케이스 소재도 단순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원가 절감 폭이 극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마진은 매우 얇게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브랜드들이 뛰어드는 이유는 바로 이 '전국 노출'이라는 마케팅 가치 때문입니다.
다만 이 흐름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가 경쟁이 심화될수록 품질 관리 기준이 느슨해질 위험이 있고,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와 영세 브랜드가 나눠 지게 됩니다. 다이소 매출은 2022년 기준 2조 9,000억 원으로 올리브영(2조 7,800억 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다이소가 약 290억 원으로, 올리브영의 약 2,700억 원과 열 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뷰티로 실제 수익을 내는 구조가 되려면 지금과는 다른 수익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매장 수 1,442개로 올리브영을 이미 추월한 다이소의 유통 커버리지
- 트윙클팝·테그 등 기존 인디 브랜드와의 협업 라인이 이미 출시 중
- 영업이익 규모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뷰티 수익 구조 완성은 과제로 남음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예전에 "왜 대기업들은 잘 되는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느냐"며 답답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조직 문화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존심과 자본력이 얽힌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0에서 1을 만드는 건 인디 브랜드가 잘하고, 1을 100으로 키우는 건 대기업이 잘하는 영역인데, 서로 그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직접 다 하려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 뷰티 시장은 단순히 어떤 틴트가 잘 팔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통 구조, 제조 생태계, 소비자 행동이 동시에 바뀌고 있는 전환기입니다. 다이소에서 화장품을 처음 사보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올리브영도 지금의 포지션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재투자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인디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킬러 아이템 하나에 기대는 것을 넘어, 소비자 데이터를 빠르게 제품에 반영하는 실행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 본문의 수치는 각 사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최신 실적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투자 판단의 근거가 아닌 산업 구조 이해를 위한 참고 자료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