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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의 2022 회계연도 매출은 약 62억 달러, 우리 돈으로 8조 원이 넘는다. 청바지 하나로 이 숫자를 만든다는 게 처음엔 실감이 안 났다. 그런데 그 숫자를 파고들다 보니, 청바지는 그냥 바지가 아니라 원가 구조와 브랜드 서사와 장인 기술이 한데 얽힌 꽤 복잡한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오카야마 데님이 일본에서 탄생한 진짜 이유

1970년대 리바이스는 생산 방식을 크게 바꿨다. 셔틀직기, 즉 씨실을 좌우로 왕복 투입하며 천천히 원단을 짜던 구형 방식 대신 고속 신형 직기를 도입하면서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셔틀직기는 속도는 느리지만 원단이 불규칙하고 구불구불한 텍스처를 갖게 되는데, 이 불규칙함이 오히려 페이딩(세월에 따라 색이 자연스럽게 바래는 과정)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당시 미국의 데님 매니아들은 이 변화를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시골 빈티지 매장과 낡은 공장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원단과 부자재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복각 문화의 발원지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사실은 처음 접했을 때 다소 의외였다.

일본 데님 헌터들은 구하기 어려워진 오리지널 제품 대신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오카야마는 원래 섬유 산업 기반이 탄탄한 지역이었고, 그 위에서 풀카운트, 오어슬로우 같은 복각 브랜드들이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다만 이 서사를 매니아들의 열정만으로 설명하는 건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정교한 방직 기술과 장인 노동력이라는 산업적 기반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했던 현상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국내에서는 대밀이 오카야마 기술을 직접 들여온 케이스로, 무기홀리데이가 복각과 현대적 감각을 섞은 케이스로 자주 언급된다.

리바이스 vs 뱅뱅, 재무제표로 읽는 데님의 민낯

리바이스의 2022 회계연도 조정영업이익(Adjusted EBIT)은 약 7억 1,300만 달러 수준으로 발표됐다(출처: Levi Strauss & Co. Investor Relations).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부진을 겪었다가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브랜드의 복원력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데님 브랜드가 일반 의류보다 원가율이 낮고 재고 회전이 빠른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재고 회전율이란 일정 기간 동안 재고가 판매로 전환되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 의류는 시즌마다 SKU(재고 관리 단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청바지는 품종이 상대적으로 적고 4계절 내내 수요가 이어지기 때문에 현금 유동성 관리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대량 생산 구조에서 실험적인 워싱을 잘못 도입하면 재고가 순식간에 쌓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니클로의 워싱이 무난하고 안전한 이유가 단순히 대중 취향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국내 브랜드 뱅뱅을 보면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1979년 설립돼 40년 넘게 이어온 브랜드로, 공시 자료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는 대기업 데님 브랜드에 비해 훨씬 작은 편이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 정확한 최신 수치는 사업보고서 원문 확인 권장). 이 정도 규모를 "안정적인 밸런스"로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성장을 포기한 대가라는 냉정한 해석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한 걸 성공적인 최적화로만 보는 건 결과론에 가까울 수 있다. 살아남은 건 분명 대단하지만, 그 생존 방식이 축소된 규모 안에서의 생존이라는 점은 냉정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다.

"재고도 재산"이라고 믿는 소규모 브랜드의 운영 방식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회계적으로 보면 재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금 유동성을 잠식하는 부담이다. 그런데 절대 세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오히려 스몰 브랜드 특유의 낭만이자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재무적 위험 신호이면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뢰의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데님 브랜드는 구조적으로 재고 리스크가 낮은 업종이지만, 재고를 자산으로 여기는 운영 방식은 현금 유동성을 위협하는 실질적 위험일 수 있다.

청바지를 고를 때 실제로 뭘 봐야 하나

디테일을 파고들수록 청바지를 고르는 기준이 구체화된다. 브랜드보다 스티치 간격과 워싱 방식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핏만 보고 사던 시선이,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궁금해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버튼 플라이(지퍼 없이 단추만으로 앞판을 여닫는 방식)는 1950~60년대 이전 리바이스 생산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복각 데님에서 과거 방식을 재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이런 용어 하나를 알고 나면 청바지 한 벌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기준으로 데님을 고르는 게 합리적일까. 용도와 예산에 따라 접근이 달라진다. "클래식한 한 벌을 오래 입겠다"는 쪽이라면 리바이스 501이나 풀카운트, 오어슬로우 같은 복각 브랜드를 보는 게 맞다. 셔틀직기 원단인지, 버튼 플라이인지를 확인하는 게 핵심이다. "부담 없이 다양하게 입겠다"는 쪽에는 유니클로처럼 합리적인 가격선의 데님도 충분한 선택이다. 안전한 워싱과 무난한 실루엣은 대량 생산 리스크 관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무기홀리데이가 복각의 재현성과 현대적 실루엣을 함께 가져가는 균형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나이키와 리바이스를 비교하면서 카테고리 경쟁 강도 차이를 이유로 드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건 카테고리 자체의 확장 가능성 차이일 수 있다. 기능적으로 이미 완성된 물건에서 혁신의 서사를 만드는 건 구조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결국 청바지는 클래식이라는 말에 계속 마음이 갔다. 유행이 왔다 가도 데님은 거기 있고, 브랜드가 부침을 겪어도 501은 남는다. 다만 그 클래식함 뒤에 원가율, 재고 구조, 복각의 산업적 조건 같은 현실적인 맥락이 붙어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청바지 한 벌을 고를 때 보이는 게 조금 달라진다. 스티치 간격을 먼저 보는 태도가 처음엔 유별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잘 살 수 있으니까.

※ 이 글에 인용된 기업 재무 수치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참고용 정보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판단이나 소비 결정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최신·정확한 수치는 각 기업의 공시자료(DART, 기업 IR 페이지 등)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Levi Strauss & Co. Investor Relations,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