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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가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와인을 정작 이마트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피로연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신세계 계열사 재무 담당 선배에게 이 얘기를 꺼냈더니, 선배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사내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방송에서 들었던 분석이 실제 조직 안에서도 비슷한 시선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와이너리 인수의 진짜 비용, 숫자가 말하는 것

신세계가 인수한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s)는 나파밸리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컬트 와이너리입니다.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 전체 포도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서울시 면적의 상당 부분에 맞먹는 규모가 포도밭으로 채워진 지역입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도 포도밭이 끊이지 않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인 곳이죠.

신세계프라퍼티는 2022년 2월, 미국 자회사 스타필드 프라퍼티스를 통해 쉐이퍼 빈야드와 관련 부동산을 약 3,078억 원에 인수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이 중 영업권, 그러니까 자산 가치보다 더 얹어 지불한 브랜드 프리미엄은 419억 원이었습니다. 인수 첫해였던 2022년(인수 후 잔여 기간 기준) 매출은 292억 원, 연환산하면 약 336억 원 수준이었는데, 같은 기간 순손실은 163억 원에 달했습니다. 처음부터 흑자를 내기 쉬운 구조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제가 직접 관련 공시와 보도를 찾아보다가 더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026년 4월, 신세계프라퍼티가 인수 당시 반영했던 영업권 419억 원을 장부에서 전액 손상차손 처리해 0원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손상차손 처리는 실제 현금이 빠져나가는 건 아니지만, 회사가 스스로 이 브랜드 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한국신용평가는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낮췄는데, 이유로 미국 와이너리 취득과 부동산 개발에 따른 자금 소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국내 주류 유통을 담당하는 신세계L&B 역시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고요. 선배가 사내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한 게 단순한 뒷담화가 아니라 숫자로 확인되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물론 이 결과 하나로 인수 결정 자체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유통 담당 지인은 해외 자산 인수가 단순히 오너 개인의 취향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내 성장이 정체된 대형 유통사들이 해외 자산을 브랜드 포트폴리오처럼 쌓아두는 관행과도 맞물려 있다는 시각이었습니다. 오너의 낭만이라는 서사는 듣기엔 명쾌하지만, 그 뒤에 있는 조직적 의사결정 구조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 설명을 택하든, 지금까지 나온 실적과 손상차손 처리 결과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 인수금액 약 3,078억 원 중 영업권 419억 원은 2026년 전액 손상차손 처리되어 0원으로 반영됨
  • 인수 첫해 연환산 매출 약 336억 원, 순손실 163억 원 기록
  • 이마트 신용등급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하향 조정, 사유로 해외 자산 취득에 따른 재무부담 지속이 거론됨
  • 신세계L&B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 기록 중

마트와 편의점, 와인을 파는 각자의 이유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와인 코너가 눈에 띄게 넓어졌습니다. 조명도 바뀌고, 진열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저도 최근에 이마트에 들렀다가 와인 셀러가 쫙 펼쳐진 모습을 보고 잠깐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니 괜히 발길이 느려지고, 장 보러 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됩니다.

와인을 눈에 띄는 자리에 배치하는 건 마트 전체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머천다이징 전략에 가깝습니다. 머천다이징이란 어떤 상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연출해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지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와인 코너 확장이 오너 세대의 입맛 변화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프랜차이즈 컨설팅 쪽 지인은 그 설명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신선식품 확대나 델리 코너 강화도 같은 논리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한 사람의 취향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구조적인 흐름이라는 거죠.

문제는 정작 마트가 강점을 가져야 하는 가성비와 와인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트에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핵심은 온라인에서 살 수 없는 수준의 가격과 품질인데, 와인은 싸면 품질이 불안정하고 좋으면 비쌉니다. 어중간한 포지셔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위스키는 다릅니다. 특정 제품을 사러 간다는 목적이 명확한 사람이 마트 방문의 계기가 되고, 그 김에 다른 장도 봅니다. 와인은 그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편의점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대학 동기가 편의점 본사 상품기획팀에서 일하는데, 예전에 요즘 편의점은 매장 늘리는 게 아니라 객단가 싸움이라고 카톡으로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이후 그 말의 맥락이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가맹사업 현황을 보면 국내 편의점 가맹점 수는 이미 5만 5천 개를 넘었습니다. 신규 매장 출점으로 매출을 늘리는 시대는 사실상 끝난 셈입니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한 사람이 왔을 때 더 많이 사게 만드는 것, 즉 객단가를 높이는 것입니다. 객단가란 고객 한 명이 한 번 방문할 때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을 말합니다. 우유 사러 들어왔다가 와인 한 병을 더 집어 들면 객단가가 단번에 올라갑니다. 편의점 입장에서 와인이 매력적인 아이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친구도 제가 이 얘기를 전하니 진열 공간 때문에 다양성 있는 구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했습니다. 평점 기준으로 검증된 무난한 품종 위주로 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편의점 와인에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칠레산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 같은 안전한 선택지가 반복됩니다.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이 다양성인데, 편의점 진열대에서는 그 다양성을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국내 와인 수입액 자체가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최근 몇 년째 하락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의점이 객단가 전략으로 와인을 활용하고 있지만, 시장 전체의 방향성이 수축 국면이라는 점은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와인 시장이 한동안 조정 국면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장기 성장 가능성까지 수입액 감소 수치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한국인이 먹고 마시는 문화를 즐기는 방식, 음식과 술의 조합을 탐색하는 소비 패턴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오크 숙성 까베르네 소비뇽을 김치찌개와 함께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식과 와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편견인지 압니다. 음식에 맞는 와인을 찾는 재미를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편의점 진열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콜키지 문화의 확산이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콜키지란 식당에서 외부에서 가져온 와인을 오픈해주는 대신 받는 서비스 이용료입니다. 소주보다 와인의 순환 속도가 느리다 보니 식당에서 마진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우회하는 방법이죠. 이 방식이 자리를 잡으면 와인을 직접 골라 식당에서 즐기는 경험이 지금보다 훨씬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와이너리 인수보다 이 방향이 시장 저변을 실질적으로 넓히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 이 글은 공개된 공시 자료와 보도 내용을 참고해 정리한 개인적인 분석과 의견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판단이나 재무적 조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투자 결정은 최신 공시와 전문가의 조언을 함께 확인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