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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1인당 와인 소비량이 20년 만에 57.5L에서 38L로 30% 넘게 줄었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처음엔 좀 의아했습니다. 덜 마신다는데 와인 가격은 왜 계속 오르는 걸까요. 영상 한 편을 보고 나서야 그 답이 어렴풋이 잡혔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 회사 회식 자리의 어색한 침묵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프랑스가 과잉 생산된 와인을 증류주로 전환해 폐기하는 정책부터 살펴봤습니다. 이 방식은 쌀 풍년이 들면 정부가 물량을 격리 매입하는 국내 수급 조절 정책과 구조가 비슷했습니다. 겉보기엔 손해처럼 보이지만, 시장에 풀리는 공급을 줄여 가격을 방어하겠다는 논리입니다. 이 접근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농업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수급 조절 정책의 실질적 수혜자는 결국 대형 브랜드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영세 와이너리는 재고를 버틸 체력이 부족해 먼저 밀려나는 반면, 브랜드 파워를 가진 곳은 오히려 희소성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웬만하면 사둬라"라는 말이 도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와인일수록 지난 수십 년간 가격이 내려간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후위기(Climate Crisis)도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날씨가 더워지는 문제를 넘어, 농업 생산 구조 자체를 흔드는 장기적 변수입니다. 포도밭이 폭염에 그대로 노출돼 수확량이 급감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차광막이나 특수 코팅으로 포도나무를 보호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자본력 있는 와이너리로 한정됩니다. 기온이 오를수록 생산량은 줄고, 줄어든 생산량은 곧바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집니다. 국제포도주기구(OIV)는 2023년 세계 와인 생산량이 기후 이상의 영향으로 6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산지도 있었습니다. 독일은 과거 서남부 일부 지역에서 달콤한 화이트 와인(White Wine) 정도만 생산하던 나라였지만, 기온이 오르면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은 물론 레드 와인까지 품질 있게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전통 산지에는 위기지만 신흥 산지에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결국 와인 시장의 양극화는 단순한 소비자 취향 문제가 아니라 기후와 자본 구조가 맞물린 결과에 가깝고, 이를 "시장 논리"라는 말로만 담백하게 정리해도 되는지는 여전히 고민이 남는 지점이었습니다.

공급 쪽 이야기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니, 자연스레 수요 쪽, 그러니까 다음 세대가 와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게 예전 회식 자리였습니다. "조니워커 블루는 알아도 와인 이름은 몰라서 아무도 리드를 못 했다." 다들 메뉴판 앞에서 멈추더니, 결국 팀장님께 선택을 일임하던 그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와인은 가격대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줄 사람이 옆에 없으면 스스로 결정하기가 유독 어려운 술입니다. 이런 이유로 젊은 세대가 와인보다 더 빠르고 직관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기 때문에 와인 시장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주변 30대 초반 후배들을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와인 소모임이나 원데이 클래스가 생각보다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한 후배는 "혼자 마시긴 부담스러워도 모임으로 가면 오히려 SNS에 올릴 콘텐츠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와인이 SNS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진단은 어쩌면 조금 오래된 관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와인과 위스키의 생산 구조 차이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테루아(Terroir)는 포도가 자라는 토양·기후·지형 등 자연환경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와인의 품질과 가격이 이 테루아에 강하게 묶여 있다 보니, 생산지를 마음대로 옮기거나 생산량을 갑자기 늘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와인은 농업의 산물이라 공장을 증설하듯 늘릴 수 없는 구조입니다. 반면 위스키는 원재료를 조달해 증류하는, 상대적으로 공업에 가까운 구조라 수요가 늘면 설비 확충으로 대응할 여지가 더 큽니다. 이 차이가 두 시장의 가격 탄력성이 다르게 움직이는 핵심 이유였습니다.

빈티지(Vintage) 개념도 이 지점에서 함께 짚어볼 만했습니다. 빈티지란 와인의 원료가 된 포도의 수확 연도를 뜻하며, 같은 와이너리라도 해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크게 갈립니다. 기후가 불안정해질수록 좋은 빈티지의 희소성은 더 높아지고, 이미 시장에 풀린 고품질 빈티지 와인의 가격이 내려갈 이유는 점점 사라집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가성비 와인을 고를 때 비비노(Vivino) 평점 4.0 이상만 찾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탄닌(Tannin), 즉 포도 껍질과 씨앗에서 나오는 폴리페놀 성분이 만드는 떫고 쌉싸름한 질감은 입문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어서, 자연히 달고 부드러운 와인이 높은 평점을 받기 쉬운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비비노 고득점 와인은 "누구나 무난하게 마시기 좋은 와인"에 가깝고, 구조감 있는 와인을 찾는다면 오히려 3.2~3.8점대에서 직접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전 함께 일했던 과장님이 와인 병 라벨을 한참 들여다보던 모습을 그땐 유난스럽다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공부법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속으로 놀리듯 봤던 게 조금 미안해지네요.

이렇게 공급과 수요, 두 쪽을 오가며 정리하다 보니 결론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와인 시장은 "소비는 줄고, 가격은 오르고, 폐기는 늘어난다"는 역설 속에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기후위기, 자본 양극화, 생산 구조의 비탄력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와인 폐기 정책이 합리적인 수급 조절인지, 대형 브랜드 이익을 위한 구조인지는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고, 보는 관점에 따라 둘 다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습니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만큼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습니다.

와인에 이제 막 관심이 생겼다면, 비싼 병부터 도전하기보다 라벨을 꾸준히 읽으며 자신의 입맛을 먼저 파악하는 편이 현실적인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요즘은 마트 와인 코너에서 라벨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습니다.

※ 본 글에 인용된 수치는 국제포도주기구(OIV) 등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개인적 해석이며, 특정 브랜드의 구매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또한 이 글은 성인 대상의 산업·소비 문화 분석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음주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RCBJgBtEak&list=PLbG_OH_pU3mr80W2ShL6W2JDYmdH9D9Am&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