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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미국이 집 때문에 이렇게 난리라는 걸 잘 몰랐습니다. 땅덩어리가 그렇게 넓은 나라가 집이 부족하다는 말이 처음엔 잘 안 믿겼거든요. 그런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등장한 숫자, 현재 미국에서 부족한 단독주택이 1,000만 채라는 추정치를 보고 나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6%대 중반(약 6.6~6.7% 안팎)을 오가고 있고, 2000년 이후 집값은 82% 오르는 동안 소득은 12% 느는 데 그쳤다고 합니다. 저희 회사 미국 지사와 화상회의를 자주 하는 팀 동료한테서 들은 뉴욕 출장 얘기가 이 맥락에서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000만 채 공급부족, 왜 땅 넓은 미국에서 생겼나
미국이 주택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사실 꽤 오래된 얘기입니다. 연구 기관마다 추정 방식이 달라서 적게는 100만~400만 채, 많게는 1,000만 채까지 다양한 수치가 나오는데, 올해 4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발표한 '대통령 경제 보고서'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정상적인 건설 속도가 계속됐다면 지금보다 최소 1,000만 채의 단독주택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출처: 백악관 CEA, 2026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제6장). 다만 이 수치는 프레디맥(약 370만 채)이나 전미주택건설협회(약 120만 채) 같은 다른 기관들의 추정치보다 훨씬 커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측정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논쟁이 있다는 점은 함께 알아둘 만합니다.
원인으로 꼽히는 건 복합적입니다. 건설 자재 비용 급등, 까다로운 용도지역제(Zoning), 복잡한 인허가 절차, 환경영향평가 부담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용도지역제란 특정 땅을 주거·상업·공업 등 용도별로 나눠 규제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이 땅엔 단독주택만 지어야 한다"고 못 박아두는 규정인데, 미국에서 이 규제가 촘촘하게 작동하다 보니 땅은 넓어도 정작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심 인근에는 공급이 막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2026년 6월, 상원 85대 5, 하원 358대 32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21세기 로드 투 하우징 법안(21st Century ROAD to Housing Act)'이 최종 통과됐습니다. 초당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큰 법안인데, 핵심은 공급 확대입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모펀드 등 대형 기관 투자자의 단독주택 매입 제한 (수요 억제)
- 중소형 대출(10만 달러 미만) 활성화를 위한 FHA 시범 프로그램 도입
- 제조주택·농촌주택 관련 금융 절차 간소화
- 주택 공급 관련 연방 절차 지연 요인 축소
다만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 법안인 SAVE 법(유권자 신분 확인 강화 법안) 통과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서명식을 전격 취소했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헌법상 서명 기한(10일)이 지나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2026년 7월 11일 법안은 자동으로 발효돼 법률로 확정됐습니다. 정치적 신경전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법안 내용 그대로 시행 단계에 들어간 셈입니다.
아파트 인식, 1949년 주택법이 만든 편견
텍사스 오스틴시가 실제로 대중교통 인근 지역에 고밀도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렸더니, 50세대 이상 대형 아파트 단지 기준 임대료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7% 하락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미국 대도시 중 가장 가파른 하락 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작동했다는 방증인데, 그렇다면 왜 이 방법을 전국적으로 쓰지 못하는 걸까요.
이 지점에서 역사적 맥락을 짚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습니다. 1949년 미국은 주택법을 제정하며 슬럼가를 허물고 대규모 공공주택으로 교체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좋은 의도였지만 결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택담보대출(Mortgage)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백인 중산층은 대출을 받아 교외의 단독주택으로 빠져나갔고, 공공주택 단지에는 저소득층과 유색인종이 많이 남게 됐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택담보대출이란 집을 담보로 장기 자금을 빌리는 대출 방식으로, 이때의 대규모 확대가 미국식 교외 주거 문화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 여러 도시사 연구자들의 설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가 되지 않은 일부 공공주택 단지는 빈민가로 변해갔고, 1970년대에는 대규모로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많은 미국인들은 아파트라는 단어에서 빈곤, 범죄, 낡은 시설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미국 교환 근무를 다녀온 동료도 "거긴 진짜 아파트 자체를 안 좋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당시엔 그냥 문화 차이려니 했습니다. 이 역사를 알고 나니 그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70여 년에 걸쳐 학습된 인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재건축 얘기를 하실 때마다 "낡을수록 좋은 거다, 재건축 프리미엄이 붙으니까"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게 좀 이상한 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뒤집어 생각해보면, 미국인들이 낡은 아파트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제가 아버지 말씀에 느꼈던 그 의아함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같은 '낡음'이라는 현상을 두고 한국과 미국이 정반대의 신호로 읽는다는 게, 이 문제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지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노조가 아파트 공급을 막는다는 게 사실일까
솔직히 처음엔 이 부분이 과장된 얘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제가 주택 위기의 원인이라고? 그런데 관련 보고서를 찾아보고 나서는 그냥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2024년 미국의 도시계획 연구자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가 낸 엘리베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에서 4개 층짜리 건물에 기본형 엘리베이터 한 대를 설치하는 비용이 약 15만 8천 달러(약 2억 원 안팎)인 반면, 스위스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약 3만 6천 달러(약 5천만 원 안팎) 수준이라고 합니다. 4배가 넘는 차이입니다(출처: California YIMBY, "Movin' On Up? The Low Ceiling of North American Elevator Standards"). 이 비용 때문에 중소형 아파트 개발업자들은 엘리베이터 설치 자체를 꺼리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비용 구조의 뒤에는 국제 엘리베이터 건설 노조(IUEC)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IUEC란 미국과 캐나다를 관할하는 엘리베이터 설치·유지보수 노동조합으로, 미국 건설업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강력한 노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노조와 제조사 간 협약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공장에서 사전 조립해 현장에서 설치만 하는 방식, 즉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tion) 방식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리패브리케이션이란 공장에서 부품을 미리 조립해 현장 작업을 최소화하는 제조 방식으로, 유럽 등 다른 지역의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대체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를 허용하면 현장 기술자들의 일감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협약에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게다가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 등 대부분 국가가 따르는 EN 81 표준과 달리, 독자적인 ASME A17.1 규격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해외에서 저렴하게 제조된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폐쇄적 시장 구조는 기술 격차라기보다는 규제와 노동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 여러 도시계획 연구자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 뉴욕 4층 엘리베이터 설치비: 약 15만 8천 달러 (스위스 약 3만 6천 달러 대비 4배 이상)
- IUEC 협약으로 공장 사전조립(프리패브리케이션) 방식이 사실상 제한됨
- 미국·캐나다는 ASME A17.1, 그 외 대부분 국가는 EN 81 표준 사용 — 규격 불일치로 수입 제약
노조의 폐쇄성이 비효율을 만든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 구조가 단순히 노조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안전 기준을 높게 유지하려는 목적도 일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균형점을 어디서 찾느냐가 진짜 정책 문제인데, 현재로서는 비용 부담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국 모델이 정답인가, 아전인수 해석의 위험
이 주제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자주 나오는 결론이 있습니다. "미국도 한국처럼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는 식의 얘기입니다. 오스틴시 사례처럼 고밀도 아파트 공급이 실제로 임대료를 낮췄다는 결과가 있으니, 방향성 자체는 맞아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론이 조금 성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고밀도 아파트 모델이 작동한 건 몇 가지 조건이 함께 맞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촘촘한 대중교통 인프라, 압도적인 인구 밀도, 재건축 기대감에 기반한 특유의 부동산 투자 문화, 정부 주도의 대규모 택지 개발이 조합된 결과입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을 말하는데, 한국에서 이 수치를 300%에서 400%, 500%로 높여온 역사는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특정 주거 방식을 선택해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 맥락을 빼고 "숫자만 올리면 된다"고 얘기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화된 처방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단독주택·타운하우스가 전체 주거 형태의 약 71%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명 중 7명이 마당 있는 집에 사는 나라에서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건 물리적 건설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저항과 문화적 전환이 함께 필요한 문제로 보입니다. 실제로 일부 지방정부가 단독주택 전용 구역 규제를 완화하려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컸다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내 동네 분위기를 망친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진다"는 반응은 단순한 님비(NIMBY) 현상이라기보다 앞서 설명한 역사적 학습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오스틴 사례 하나를 근거로 "이게 답"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제 경험상 조금 이를 수 있습니다. 오스틴은 IT 기업 이전으로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2015년 이후 10년간 주택 재고를 30%(약 12만 채)나 늘린, 비교적 특수한 도시입니다. 공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정치적 환경과 토지 여건이 함께 갖춰진 경우였고, 이 조건이 다른 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책적 판단을 할 때는 하나의 성공 사례보다 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미국 집값 문제를 파고들수록 이게 단순히 "집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아파트 인식, 노조 협약에 묶인 엘리베이터 비용, 오래된 토지 이용 규제, 정치적 타협까지 겹쳐 있는 복합 방정식에 가까워 보입니다. 뉴욕 출장에서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당연하게 여겼다는 동료의 얘기가 이제는 단순한 여행 에피소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한 단면으로 읽힙니다.
21세기 로드 투 하우징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2026년 7월 법률로 확정된 만큼, 그다음 관전 포인트는 오스틴식 공급 확대 경험이 다른 도시로 얼마나 확산되는지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주택 정책 변화는 국내 부동산 시장이나 건설 산업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흐름으로 보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NT-gOjT8Kw&list=PLFFs3piXvo8s&index=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