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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동네 서점 앞에서 10% 할인이니 적립금이니 따지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 산업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국내 성인 독서율이 47%까지 떨어졌다는 통계를 볼 때마다 "출판 시장은 정말 무너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이랬던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며칠에 걸쳐 몇몇 출판사의 재무제표를 직접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숫자 하나였습니다. 국내 성인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21년 47%까지 떨어졌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종이책과 전자책을 모두 합친 수치임에도 절반 아래로 내려앉았다는 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 독서율이 78%에서 75%로 완만하게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하락 폭이 유독 가파르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정도면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어야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감사보고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요 문학 출판사들의 공개된 재무 수치를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민음사의 2021~2022년 매출은 148억 원에서 145억 원으로 거의 그대로였고, 매출원가율(매출 대비 제품 제작·공급 비용의 비율)도 55% 선에서 고정돼 있었습니다. 창비 역시 293억 원에서 291억 원, 문학동네는 291억 원에서 330억 원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세 곳 모두 매출원가율이 55% 안팎으로 수렴한다는 건, 독서율이 반토막 나는 동안에도 이 산업의 원가 구조 자체는 수년째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는 "역시 정체된 산업이구나" 정도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후배는 해마다 조직개편에 시달리고, 소속 팀 자체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10년 넘게 비슷한 원가율로 버텨온 이 업계의 화석 같은 안정성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민음사의 퇴직급여충당부채(전 직원이 동시에 퇴직할 경우 지급해야 할 금액을 미리 쌓아두는 부채 항목)는 44억 원으로, 평균 근속연수가 약 15년에 이른다는 점을 짐작하게 합니다. 재무 구조뿐 아니라 조직 자체도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셈입니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배경을 찾다 보니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이 시리즈 하나가 민음사 매출의 45% 이상을 꾸준히 책임지는 스테디셀러라는 겁니다. 특정 시기에 반짝 팔리는 베스트셀러와 달리, 스테디셀러는 오랜 기간 안정적인 판매량을 만들어내는 타이틀을 뜻합니다. 물론 도서정가제(출판물 할인 폭을 법으로 제한하는 제도)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가격이 묶여 있으면 출판사가 쓸 수 있는 마케팅 카드가 사실상 가격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 제도가 없었다면 자본력을 갖춘 대형 온라인 서점 중심으로 시장이 훨씬 빠르게 재편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방 소형 서점들은 이미 상당수 문을 닫았을 것이고, 제가 주말마다 찾는 동네 서점 역시 지금까지 버텨오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규제 완화만이 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이렇게 재무제표 쪽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을 즈음, 마침 옆 팀 동료가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며 남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달에 두 권도 못 읽는데 매달 결제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개인의 이용 패턴 문제라고 넘겼지만, 이 업계의 정산 구조를 들여다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보통 구독 서비스는 많이 이용할수록 이용자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지지만, 이 시장은 조금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대표 전자책 구독 플랫폼의 정산 방식을 보면, 한 타이틀이 25회 다운로드됐을 때 비로소 종이책 정가의 80% 수준이 출판사에 지급되는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책 한 권이 팔린 것과 비슷한 수익을 얻으려면 25번의 다운로드가 쌓여야 하니, 실질적으로는 정가의 4% 수준에서 거래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동료가 결제를 부담스러워한 이유와는 별개로, 반대편에 있는 출판사 역시 이 구조 안에서는 그리 넉넉한 처지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민음사처럼 보수적인 출판사는 보유한 전체 도서 중 일부만 플랫폼에 공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굳이 초반부터 구독 플랫폼에 올릴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출간 후 어느 정도 시간, 이를테면 18개월 정도가 지난 뒤 공급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반대로 독자 입장에서는 정작 가장 보고 싶은 신간이 플랫폼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이러니로 남습니다. 동료가 구독을 끊은 것도 어쩌면 이 지점, 그러니까 정작 읽고 싶은 책은 늘 구독 대상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플랫폼은 상장 전년도에 매출 450억 원, 영업이익 41억 원을 기록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영업이익률(매출 중 실제 영업활동으로 남긴 이익의 비율)이 약 9%로, 콘텐츠 플랫폼치고는 낮지 않은 수준입니다. 비용 구조를 효율적으로 설계한 결과로 보였습니다. 다만 공급자인 출판사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산 구조가 장기적으로 콘텐츠의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플랫폼의 실적과는 별개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보입니다.
이쯤 되니 자연스레 서점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서점에서는 QR코드로 표지만 확인하고 실제 배송은 온라인으로 받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일을 하는 친구가 남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서점에 가는 건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무르고 싶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주말에 서점을 찾는 이유가 꼭 구매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QR 매대만 남은 공간이 사람들을 계속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종이책이 지닌 촉감과 무게, 냄새 같은 물리적 경험 자체가 서점을 서점답게 만드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며칠간 재무제표와 정산 구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가며 얻은 결론은 하나로 모였습니다. 출판 시장은 밖에서 보면 위기지만 안에서 보면 비교적 평온한 산업이라는 것입니다. 재무제표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그만큼 급격한 충격이 없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개구리가 위험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산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전체 독자 수는 줄어들더라도, 실제로 읽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이 구매하는 양극화 패턴이 독일 등 도서 강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막연한 위기감이 아니라, 출판사 브랜드를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작업과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구조 개선일 것입니다. 서점 매대 앞에서 적립금을 계산하는 대신,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을 정가로 사는 독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 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 본 글에 인용된 수치는 각 사의 공개된 감사보고서 및 전자공시시스템(DART)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개인적 분석이며, 투자 판단의 근거 자료가 아닌 참고용으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_l-SKX0ssE&list=PLbG_OH_pU3mr80W2ShL6W2JDYmdH9D9Am&index=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