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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도 처음엔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이 그냥 "트렌디한 백화점"이려니 했습니다. 작년에 여의도 근처 결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 내려갔다가,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구경도 못 하고 나왔거든요. 그때는 그냥 유행이 만들어낸 풍경이라고 넘겼는데, 나중에 그 공간을 기획한 바이어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이게 우연이 아니었구나"를 실감했습니다. 몇 년씩 준비하고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쌓아 올린 공간이라는 걸 알고 나면, 그 지하 2층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가장 먼저 눈여겨봐야 할 건 입지입니다. 백화점 입지 전략에는 1차 상권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점포를 중심으로 반경 5km 이내, 그러니까 걸어오거나 가장 자주 방문하는 핵심 고객이 사는 지역을 뜻합니다. 보통 백화점이 성립하려면 이 안에 주민등록 인구가 최소 10만~20만 명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더현대 서울이 들어선 여의도의 1차 상권 인구는 약 33,000명에 불과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백화점을 지을 이유가 없는 곳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없는 MD"였습니다. 기존 백화점과 겹치지 않는 브랜드로 채우라는, 경영층이 "내가 모르는 브랜드로 채워라"라고 지시했을 만큼 과감한 방향이었습니다. 저도 그 공간을 직접 돌아봤을 때 느꼈지만, 롯데나 신세계 지하층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몰라도 일단 눈이 가는 매장들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그게 다 이 전략의 결과였다는 게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더현대 개점 여부를 두고 내부에서도 찬반이 반반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들 "저도 그때 찬성했었다"고 한다는 얘기에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다 내 공이 되는 건 어디를 가나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 MD를 실제로 채우는 과정은 훨씬 험난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백화점 MD를 준비하다 그만둔 후배가 "백화점 바이어들 진짜 을 중의 을이다"라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푸념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더현대 바이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성수동 가고 홍대 가고, 심지어 현대백화점 바이어가 직접 찾아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대목에서였습니다. 당시 힙한 포지션의 브랜드들이 백화점 입점을 꺼린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백화점이 자신들의 메인 타깃이 아닌 "그 고객들의 엄마 아빠가 가는 곳"으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소비자 마음속에 심어둔 이미지, 즉 브랜드 포지셔닝이 백화점 입점과 충돌한 겁니다. 입점이 자칫 그 포지션을 "끝물" 이미지로 훼손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흐름을 뒤집은 계기가 노재팬 사태였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으로 유니클로가 영 패션 매출의 15%를 잃자, 바이어들은 오히려 새 브랜드를 찾을 명확한 명분을 얻었습니다. 위기가 방향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영 패션은 원래 1990~2000년대 X세대의 라이프사이클과 함께 성장한 장르로, 롯데는 영플라자, 현대는 유플렉스라는 별도관을 만들 만큼 파이가 컸는데, 그 세대가 중년이 되면서 성장 동력이 자연히 꺾이던 참이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한때 거절당했던 브랜드들이 이제는 먼저 연락을 해온다고 하니, 그 역전의 쾌감이 얼마나 클지는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역시 팝업 매출 규모였습니다. 슬램덩크 팝업이 9억 8천만 원, im 스튜디오(빈지노 10주년) 팝업이 10억을 목표로 기획됐다는 숫자는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팝업 하나가 10억이라는 게 쉽게 체감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아이돌 관련 팝업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을 고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열 개씩 집어 든다는 뜻이니까요. 제 친구 중에 아이돌 팬인 친구가 실제로 "데뷔 못하면 죽는 병" 팝업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저는 그때 "그 돈 주고 왜 사냐"고 핀잔을 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그건 단순한 쇼핑이 아니었습니다. "만날 수 없고 가질 수 없으면 더 아련하다"는 표현이 그 심리를 정확히 설명합니다. 실제로 만날 수 없는 픽션 캐릭터이기 때문에 오히려 팬덤 화력이 실제 아이돌보다도 강하게 폭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바이어들 사이에는 이른바 '월드 레코드' 경쟁도 있다고 합니다. 팝업 아이코닉 스팟, 그러니까 더현대 지하 2층 정문 쪽 가장 큰 공간에서 매출 기록을 보유한 바이어가 비공식적인 자존심 게임을 벌인다는 겁니다. 원소주 팝업 3억이 기준점이 됐다가 슬램덩크가 9억 8천으로 넘어서고, im 스튜디오가 10억을 노리는 식으로 계속 갱신되는 구조입니다. 수치 경쟁이 팀 전체의 동력이 된다는 게, 제가 봤을 땐 단순한 KPI 관리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 시스템처럼 보였습니다. im 스튜디오 팝업 때 빈지노가 직접 방문하겠다고 하자 백화점 측이 "오픈 전이나 폐점 후에 와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팬덤의 집객력이 그대로 보안·안전 리스크로 바뀔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요청이었습니다. 화려한 팝업 뒤에 이런 실무적인 긴장감이 숨어 있다는 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꽤 다른 풍경입니다. 팬덤 기반 오프라인 소비 행동에 관한 연구가 국내 학술지에서도 최근 늘고 있다고 하니, 팬덤 경제는 이미 학술적으로도 눈여겨보는 분야인 셈입니다.
이쯤에서 백화점이 넷플릭스, 유튜브와 경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약간 과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맞는 말입니다. 저도 주말에 딱히 살 게 없어도 그냥 시간을 때우러 백화점에 가는 일이 늘었으니까요. 고객의 여가 시간을 어디에 쓰게 할 것인가, 그게 지금 백화점의 진짜 경쟁 상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엔 온라인 마케팅 피로도, 즉 돈을 내고 집행하는 광고에 소비자들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현상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광고를 보고 "또 광고구나" 하며 무심코 넘기는 그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오프라인에 수십억을 들여 팝업을 만들고, 줄 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인스타에 올리는 콘텐츠를 마케팅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주력으로 삼게 됐습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 냉소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가 줄을 서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순간, 우리는 무료로 광고를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경험을 즐기는 것과 인증이 목적이 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저조차도 언제부터인가 흐릿해진 것 같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그 구조를 인식하고 있는 것과 모른 채 휩쓸리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정 임대료 없이 매출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취하는 방식이 브랜드의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건 사실이지만, 화력이 약한 신생 브랜드나 독립 디자이너에게는 여전히 불리한 게임일 수 있습니다. 아이돌 팬덤 팝업이 옷이나 잡화 팝업보다 압도적으로 잘 팔린다는 사실은, 백화점 역시 결국 확실한 흥행 카드에 쏠릴 수밖에 없는 유인을 만듭니다. 마뗑킴 같은 브랜드가 5년 만에 연매출 5억에서 1,000억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그게 모든 브랜드에 열린 경로라고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더현대 지하 2층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저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 팝업이 몇 개월짜리 준비의 결과인지, 저 브랜드가 한때 문전박대를 당했다가 들어온 곳인지를 떠올리면서요. 공간 기획이란 결국 사람들이 "여기 있을 이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게, 저에게는 이번 이야기의 핵심으로 남았습니다. 팝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실제로 더현대 지하 2층을 한번 직접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설명으로 듣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게 눈에 들어올 겁니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25C9wGN56Y&list=PLbG_OH_pU3mr80W2ShL6W2JDYmdH9D9Am&index=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