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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오를 때마다 저는 그냥 "국제 유가가 올랐겠지" 하고 넘기는 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화하실 때마다 "요즘 기름값이 왜 이렇게 이상하냐"고 하셔도, 저는 원자재 탓이겠거니 하고 흘려들었어요. 그런데 최근 검찰 수사 결과를 하나씩 뜯어보다가 멈칫했습니다. 주유소에 서서 영수증을 받아 들 때마다 느꼈던 그 찜찜함이, 어쩌면 시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전쟁 터지자마자 기름값이 오른 이유

올해 2월 말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은 거의 즉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통상 국제 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2~3주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는 닷새 만에 리터당 140원 넘게 뛰었을 정도로 유난히 빨랐습니다. 그때 저도 주유하면서 "이게 벌써 반영이 됐다고?" 하고 의아하게 여겼는데,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 결과는 이 의문에 상당히 구체적인 답을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정유 시장은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4개 사의 점유율 합계가 98.6%에 이르는 과점 구조입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결정부서 관계자들이 2024년 7월부터 주유소 공급가 정보를 서로 교환해 왔고, 전쟁 발발 직후에는 가격 인상 시기와 폭까지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두 회사의 직접 담합 규모만 14조 2천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두 회사가 올린 가격을 그대로 따라간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런 '가격 추종'은 명시적 합의의 증거가 없어 직접 담합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지만, 검찰은 경제적으로는 담합과 유사한 효과를 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추종 효과까지 더한 전체 경쟁제한 규모는 26조 원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다만 SK에너지와 담당 직원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즉 리니언시를 활용해 이번 기소 대상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공개된 사내 대화 내용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가격결정부서 직원들 사이에서 전쟁 덕에 회사 실적이 좋아졌다는 취지의 대화가 오갔고, 한 해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언급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저런 이야기가 업무용 메신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했거든요. 조직적인 증거 인멸 정황도 함께 확인됐다고 하니, 이런 대화가 남아 있었던 것 자체가 수사에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짚어볼 부분은 자영 주유소에 부과된 전량 구매 계약입니다.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공급가를 정해 통보하면, 주유소는 다른 정유사 제품이 더 저렴하더라도 계약상 그 가격으로만 구매해야 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계약을 어기면 매출액의 10~30%에 해당하는 위약금 소송이나 각종 혜택 박탈 같은 불이익이 뒤따랐다고 하니, 유통 단계에서부터 가격 경쟁이 사실상 차단돼 있었던 셈입니다. 검찰은 이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에 대해서는 4개 정유사를 모두 재판에 넘겼습니다.

  • 국내 정유 4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 98.6% (사실상 완전한 과점)
  • 검찰이 산정한 직접 담합 규모(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 약 14조 2천억 원
  •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한 전체 경쟁제한 효과 추산: 약 26조 원
  • 현행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상한: 관련 매출액의 20%
요약: 과점 구조와 두 정유사 간의 사전 가격 조율, 나머지 두 회사의 가격 추종, 그리고 유통 계약상 경쟁 차단이 맞물려 전쟁 직후 휘발유 가격이 시차 없이 급등한 배경이 됐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다만 이는 아직 검찰의 수사 결과일 뿐, 법원의 최종 판단은 남아 있습니다.

참고: 국민일보, "'트럼프 만세'…고유가로 신음할 때 정유4사는 담합했다"

담합을 증명하기 어려운 이유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생각한 부분은, 담합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점입니다. 국내 정유사 사건과 나란히, 최근 마무리된 미국 계란 가격 담합 사례를 함께 보면 이 어려움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미국에서는 2022년 하반기부터 2025년 초 사이 계란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지목된 원인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확산이었습니다. 이는 전염력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성 가금류 질병으로, 2022년 이후 누적으로 1억 마리가 넘는 산란계와 가금류가 살처분되며 공급이 크게 줄었다는 것은 실제 사실로 확인됩니다(출처: 미국 농무부 산하 동식물검역소(APHIS)). 저도 그 시기에는 "공급 충격 때문이겠지" 하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6년 6월 말, 미국 법무부(DOJ)와 17개 주 법무장관실이 3대 계란 생산업체(Cal-Maine Foods, Hickman's Egg Ranch, Versova)를 상대로 제기했던 가격 조작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습니다. 법무부의 소장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업계 벤치마크 가격을 발표하는 시장 조사기관 Urner Barry에 실제 체결 의사가 낮은 입찰을 대량으로 제출하거나, 여러 업체가 동시에 입찰을 넣어 수요가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실제 거래 의사 없이 시세에 영향을 주기 위한 주문을 반복 제출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의 스푸핑(Spoofing) 수법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출처: 미국 법무부(DOJ) 보도자료).

제가 예전에 테마주를 추격매수하다가 물린 적이 있는데, 그때 호가창에 쌓여 있던 대량 매수 주문이 체결 직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비슷한 방식의 시세 조종이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인의 몇 퍼센트가 조작이냐"를 숫자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 유독 와닿았습니다.

업체들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공급 부족이 주된 원인일 뿐"이라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공급 충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논리를 완전히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담합이 가격 상승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면, 담합이 기여한 몫이 정확히 몇 퍼센트인지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극도로 까다롭습니다. 주가 조작 사건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형사 기소가 아니라 처음부터 민사 소송과 합의로 진행됐습니다. 세 회사가 주(州)들에 지불하기로 한 금액은 합쳐서 330만 달러 수준이었고, 이 중 업계 1위인 Cal-Maine Foods의 몫은 현금 150만 달러(약 20억 원 안팎)와 계란 3천만 개 기부였습니다. Cal-Maine은 2025 회계연도에만 약 12억 2천만 달러(약 1조 6천억 원 안팎)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공시했는데, 이 규모와 비교하면 합의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담합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이 숫자 하나가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요약: 실제 공급 충격과 인위적 가격 조작 효과가 뒤섞이면 원인 비율을 입증하기 어렵고, 이 구조적 증명 난이도가 처벌 수위를 낮추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앞으로 과징금과 소비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

국내 사건은 아직 법원 판결 전입니다. 검찰 발표만으로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쪽 시각으로만 사건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정유사 측 반박 논리나 법원에서 다뤄질 쟁점들이 아직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만큼, 지금 단계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해 보입니다.

과징금 전망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0%입니다. 직접 담합 매출로 지목된 14조 2천억 원을 단순히 20%로 계산하면 이론적으로는 최대 약 2조 8천억 원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변수가 많습니다. 우선 리니언시를 통해 자진 신고한 SK에너지는 형사 기소는 물론 과징금 감면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머지 회사 중에서도 명시적 가격 합의 증거가 없는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의식적 병행행위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식적 병행행위란 명시적 합의 없이 경쟁사 움직임을 보며 자신의 가격을 따라 올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비교 기준이 될 만한 과거 사례도 있지만, 이 사례는 오히려 신중함을 요구합니다.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 4사의 주유소 원적관리 담합에 4,3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분은 이후 법원에서 담합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상당 부분 취소된 바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담합 규모가 당시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과징금 수위도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2011년 사례가 보여주듯 검찰·공정위의 판단과 법원의 최종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번 계란 담합 사건과 별개로 소비자 집단 소송도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소비자 단체들이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개별 소비자의 실제 피해액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은 전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소식을 듣고 "그 기간에 저도 기름을 넣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개인이 손해를 입증하고 배상받는 경로는 현실적으로 멀고 좁아 보입니다.

요약: 과징금 규모는 리니언시 적용 여부와 법원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2011년 선례가 보여주듯 검찰·공정위 발표와 최종 확정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생길 수 있어 법원 판결 전까지는 어느 쪽으로도 성급한 결론을 피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제가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원자재값이 오르면 당연히 오르는 거지"라는 생각을 조금은 내려놓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오르는 것 자체는 맞을 수 있지만, 그 속도와 폭이 시장 구조나 담합으로 증폭됐을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괜한 불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검찰 발표가 전부는 아닙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 정유사 측 반론이 충분히 검토되기 전까지는 판단을 보류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담합 혐의가 인정된다고 해서 가격 상승의 모든 원인이 담합인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결정과 법원 판결을 지켜보면서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Rhtr2hJ0us&list=PLFFs3piXvo8s&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