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은퇴 후 매달 1,000만 원이 들어온다는 말, 처음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연금으로 300만 원, 강연료와 인세로 700만 원을 채운 전직 PD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며칠 뒤,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명절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가 국민연금 통지서를 식탁 위에 그대로 펼쳐두신 걸 봤습니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생활하시는데, 매달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짧게 한숨 쉬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여러 번입니다. "일찍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연금설계: 국민연금을 70세까지 미루면 벌어지는 일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은 받을 수 있을 때 빨리 받는 게 낫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찍 받아야 손해 안 본다"는 말, 주변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버지 사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전략을 꼼꼼히 뜯어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국민연금에는 연기연금 제도가 있습니다. 여기서 연기연금이란, 원래 받을 수 있는 시점보다 수령 시기를 늦추는 대신 그 기간만큼 연금액이 늘어나는 제도입니다. 1개월 늦출 때마다 0.6%, 연 환산으로는 7.2%씩 가산되는 구조인데, 최대 5년까지 연기하면 연금액이 최대 36%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게 단순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종신 수령 구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래 살수록 유리해지는 셈입니다(출처: 국민연금공단 - 국민연금 제도 안내).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장수가 보장도 아닌데 무슨 도박이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는 납득이 갑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다면 어차피 자산 소진 걱정 자체가 사라지고, 반대로 오래 살수록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이 진짜 문제가 되니까요. 그 리스크를 비교적 저렴하게 방어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연기연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전략이 현실적으로 작동하려면 수령을 미루는 동안 다른 수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퇴직연금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이란 직장에서 퇴직 시 받는 목돈을 분할 수령하거나 운용하는 제도로,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 퇴직연금이란?). 예를 들어 퇴직연금으로 60세부터 월 400만 원 정도의 수령 구조를 미리 설계해두면, 국민연금을 70세까지 늦추는 동안 생활비 공백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제가 직접 대략적인 숫자를 넣어서 계산해봤는데, 이 구조가 실제로 성립하려면 30대부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병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연기연금: 1개월 연기 시 0.6%(연 7.2%) 가산, 최대 5년(70세) 연기 시 최대 36%까지 증가 가능
- 퇴직연금(DC형·DB형): 60세부터 분할 수령 구조를 만들면 국민연금 연기 기간의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
- 개인연금: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면서 노후 현금흐름의 첫 번째 기둥 역할을 할 수 있음
- 핵심 전제: 이 구조 전체는 30대 중반 이전의 조기 가입과 꾸준한 납입이 뒷받침되어야 현실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음
노후준비: "연금 월 300만 원"이 정말 전부인가
이 사례를 며칠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걸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영상 제목은 "은퇴 후 월 1,000만 원"인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연금으로 나오는 건 300만 원이고 나머지 700만 원은 강연료와 인세입니다. 쉽게 말해,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성공적으로 만든 분의 케이스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구조를 "연금 설계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30대에 개인연금에 가입하고 수입의 50%를 저축하는 절약 습관을 실천한 것은 분명 본받을 만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저도 몇 년 전 지인 추천만 믿고 급하게 들어간 종목에서 손해를 본 경험이 있는데, 그 종목 창을 닫으며 계좌를 다시 확인했던 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 "아끼는 것부터 먼저"라는 원칙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끼는 것은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킬 필요 없이 스스로의 지출만 절제하면 되기 때문에, 재테크에서 가장 통제 가능한 변수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분의 성공은 콘텐츠 생산 능력이라는 비교적 특수한 역량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포트폴리오 분산이란 수입원을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연금, 강연, 출판 등 여러 채널에 나누어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을 말합니다. 일반 직장인이 이 구조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최대한 늦게 받으라는 조언도 개인의 건강 상태나 자산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 관련 보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만성질환이 전혀 없는 경우는 13.9%에 그쳤고, 평균 2.2개의 만성질환을 동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코메디닷컴 -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 관련 보도).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연기연금 전략이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이라 해도 수령 시기를 미루는 사이 예상치 못한 의료비 지출이 생기면 계획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상 재테크 조언은 대체로 "이 전제가 맞을 때"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전제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결론만 그대로 가져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례에서 가져갈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나눠서 보려고 합니다. 20대의 절약 습관, 30대의 개인연금 조기 가입, 국민연금 납입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 이 세 가지는 대체로 누구에게나 유효한 원칙에 가깝습니다. 반면 연기연금 전략과 수입 다각화 구조는 자신의 건강, 자산 상황, 제2의 수입원 가능성을 먼저 점검한 다음에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편이 안전해 보입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결국 제가 내린 판단은 이렇습니다. 노후준비에서 진짜 핵심은 화려한 수익률이 아니라 "일을 못 해도 생활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구조"를 먼저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연금으로 월 300만 원 수준의 기초를 깔고, 그 위에 퇴직연금과 국민연금 연기 전략을 얹는 방식은 분명 참고할 만합니다. 다만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제2 수입원이 없다면, 연기연금 전략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 당장 월급의 50%를 저축하기 어렵더라도, 개인연금 하나는 이번 달 안에 가입해두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30대에 가입한 것과 40대에 가입한 것의 차이는 나중에 숫자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제 연금 구조를 점검했고, 솔직히 조금 늦게 시작한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